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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2 제 5공화국 대한민국 각하 암살 사건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의 전말)

by 둔자곰 2021.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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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공화국 1980년대 남한과 북한은 주변국과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이 였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외교 순방 중 처음 목적지를 미얀마로 정합니다.

미얀마의 국가명은 당시에는 버마 사회주의 연방국 으로 안기부는 북측 테러를 감지하며 반대를 합니다

1970년대 중반 부터 남측의 정치,경제가 북한 보다 앞지르기 시작하더니 점차 군사력도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

그러던 중 북한과 우호적이였던 미얀마가 남한과 우호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그리 탐탁하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1983년 10월 9일 순방 이틀쩨 되던 날 오전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세계 정상들이 순방하는 동안 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상황도 그러하였습니다,

 

식전부터 기자단과정부 수행원들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 26분 벤츠 280SE 차량이 태극기를 꽂고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차량 창문마다 짙은 썬팅이 되어 있어 탑승자를 구분 할 수 없을때 이계철 미얀마 주 대사관이 먼저 도착합니다. 

"곡 각하가 오십니다" 그 말한마디에 한국 정부 수행원들은 참배를 하기 위해 도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미얀마 현지 수행원은 이계철 대사가 도착하자마자 도열하는 모습을 보고 참배를 위해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

대통령이 도착도 안했는데 식이 진행이 되자 한국 수행원은 이것이 단지 예행 연습인줄 착각을 합니다

나팔이 불고 1분 30초 후 

쾅 하는 폭음 소리와 함께 아웅산 참배 묘소의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하였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아웅산 묘소는 서석준 부총리 이계철 미얀마 대산관을 포함 17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미얀마 측은 테러리스트를 검거도중 3명이 숨집니다

한편 전두환 대통령은 묘소로 출발하는 사이 외무장관이 탑승한 승용차가 갑자기 길에서 고장이 나버립니다

당시의 미얀마 교통체제 중 택시가 드물어서 수행원들은 수소문 끝에 간신히 택시 1대를 섭외하여 뒤는게 도작하게 됩니다.

위쪽 부터 서석준 이범석 김동휘 서상철 함병춘 김재익 이계철 심상우 

 

이과정에서 장세동 경호실장의 요청에 따라 함병춘 비서실장이 먼저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함병준실자도 이계철 대사관도 전두환 전 대통령 처럼 머리스타일이 비슷했다고 합니다

 

(개그맨 심현섭의 아버지 심상우의원은 이당시 순직하고 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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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폭탄테러의 용의자는 누구일까요 

북한 인민부락부 정찰국 가운데 강미친철 대위 

폭탄 테러 다음 날 10월 10일 

바다로 향하는 김진수 신기철 강민철을 주변 주민들이 발견하여 신고합니다

조장 김진수는 생포를 하였지만 신기철과 강민철은 수류탄을 던지며 저항하며 도망갑니다.

결국 신기철은 사살되고  강민철은 자폭을 시도하였지만 큰 부상을 입고 체포됩니다.

 

하지만  김진수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오히려 강민철은 수사에 적극 협조합니다.

 

11월 4일 미얀마 정부는 체포된 2명의 진술과 증거 물품을 확인한 결과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측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고 밝힙니다.

미얀마는 북한과 공식적으로 단교를 선언하고 테러번들은 재판에 회부 시킵니다

드라마 시티헌터 중에서 

이후 미얀마 지방 재판소는 이들을 사형에 처한다고 판결합니다.

 

1986년 김진수는 사형이 집행이 되었지만 강민철은 집행을 유보합니다.

1998년 강민철은 미얀마와 한국 정부가 승인한다면 한국으로 망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합니다.

2007년 북한과 단교하였던 미얀마는 국교를 회복하고 한국 정부는 북한 측에 강민철의 면담을 허용하지 말라며 보안을 유지합니다.

드라마 시티헌터 중에서 

 

북한은 강민철이 자국민이 아니라하고 한국은 테러범이라고 송환을 거부합니다.

2008년 결국 강민철은 미얀마 교도소에서 외국인 최장 수감자로 수감하던 중 지병을 얻어 숨지게 됩니다.

아웅산 폭탄태러 사건으로 북한과 남한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만큼 극도의 상황에 놓이기 까지 했습니다 

국가 행정부와 군 지휘관이 순방 이틀째 되던 날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아웅산 묘지 테러로 인해 순국한 17인을 위해 여의도에서 국민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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